논문을 쓰다 보면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른다. “이 사료가 저 논점이랑 연결되지 않나?”, “이 개념을 이렇게 재해석하면 어떨까?” 같은 생각들. 성실하게 어딘가에 적어두지만, 나중에 챕터를 쓸 때 수많은 메모 사이에서 헤매다 “걍 다시 생각하고 쓰고 말지”가 되곤 했다.
이 글은 Claude Code의 스킬(Skill) 시스템을 활용해, 일상 기록용 저널링 스킬을 먼저 만들고, 그 구조를 연구 아이디어용 스파크 스킬로 발전시킨 과정이다. 스킬이란 자주 하는 작업 패턴을 정의해두면 Claude가 자동으로 인식해서 실행하는 기능이다. 이 과정에서 확인한 것: 첫 번째 스킬의 구조를 잘 잡아두면 두 번째부터는 변주가 빠르다는 것, 그리고 구현 방식을 지시하기보다 니즈를 설명하면 더 나은 설계가 나온다는 것.
적어둔다고 해서 활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
연구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건 이제 습관이 됐다. 애플노트에, 또는 논문 챕터별 ‘아이디어 노트’ 파일에 적어두곤 했다. 문제는 그 기록을 챕터 쓸 때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.
나중에 챕터를 쓸 때 특정 메모를 다시 보려고 하면, 수많은 메모 더미에서 꼭 헤맨다. 그 메모를 쓸 때 어떤 단어를 썼더라, 어떤 표현을 썼더라 떠올리며 Cmd+F만 수 차례 하다 보면, 결국 “걍 다시 생각하고 쓰고 말지”가 됐다. 그러다 며칠 뒤에 같은 아이디어를 산뜻하게 적어 놓은 메모를 발견하고 허탈해 하곤 했다.
아이디어 메모에도 일종의 ‘전처리’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— 키워드 태깅, 관련 챕터 명기, 기존 논점과의 연결 등등. 문제는 당장 논문 쓰기도 바쁜데, 예전 메모들을 하나씩 전처리하고 있을 시간 따위 없다는 것이었다. 그리고 새로 메모를 할 때도 전처리를 염두에 두면서 쓰기엔, 심리적 기록 장벽이 높아지는 문제가 있었다. 내가 원하는 건, 난 평소처럼 간단히 기록을 남기고, 누군가 그걸 정성스레 전처리해서 쉽게 꺼내볼 수 있는 공간에 차곡차곡 잘 정리해두는 거였다.
저널링 스킬에서 시작했다
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딴짓(?) 하다가 발견했다.
Claude Code와 한동안 작업하면서, 항상 대화창이 열려 있다는 걸 알게 됐다. 연구하다가, 코딩하다가, 그냥 멍 때리다가 — 언제든 Claude와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상태. “그러면 여기다 일기를 쓰면 되는 거 아닌가? 정리는 Claude가 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?” 싶었다. 애플노트에 순간순간의 감상이나 하루 일기도 적어두지만, 그걸 날짜별로 묶어 놓지도, 감정이나 사건별로 분류해 놓지도 않는 나의 게으름을 이 방식으로 보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.
니즈를 먼저 말하고, 설계는 함께 다듬었다
처음에는 어떤 형태로 만들어야 할지 감이 없었다. 그래서 Claude에게 이렇게 말했다.
이런 니즈가 있어. 내가 언제든, 어떤 대화창에서든, 쓰고 싶은 걸 기록하면 그걸 하루 단위로 모아주고 태그로 분류해줘. 내가 어디에 모을지, 나중에 어떻게 검색할지 고민하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싶어. 어떻게 하면 좋을까?
구현 방식을 미리 지시하지 않고, 니즈 자체를 설명한 게 핵심이었다. Claude가 스킬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고, 구체적인 설계는 대화를 통해 함께 다듬어갔다.
대화로 정해진 핵심 설계 결정들
| 결정 사항 | 내용 | 이유 |
|---|---|---|
| 트리거 | ”저널링할게”, “기록해줘”, “저널링.” | 자연어로 호출, 명령어 타이핑 불필요 |
| 저장 구조 | 날짜별 파일 (2026-01-17.md) | 투척만 하면 됨, 분류 고민 없음 |
| 원문 보존 | 내가 쓴 글은 절대 수정 안 함 | 나중에 내 원래 생각 그대로 다시 볼 수 있도록 |
| 자동 태깅 | Claude가 감정/주제 태그 부여 | 기록은 내가, 분류는 Claude가 |
| 인덱스 관리 | 전체 태그 통계를 자동 관리 | 나중에 “불안한 날”만 모아보기 가능 |
완성한 날 밤에 기록한 저널
저널링 스킬로 인해서 언제든 글을 기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. 흘러가듯 생각나는 것들, 중간중간 감상들.. 주로 오빠한테 수다떨고 흘려보냈던 것들인데, 이제 언제든 저널링을 통해 기록하고 모아둘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. 클코랑의 협업을 통해서 나는 숨쉬듯이 글 쓰는 삶을 새롭게 영위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생긴다.
예상 못한 부수효과도 있었다. 시시각각 감정을 기록해두니, Claude가 이전 저널을 읽고 맥락을 이해한 상태로 위로를 해줬다. 개발할 때 의도한 기능이 아니었는데, 꽤 큰 위안이 됐다.
”이걸 연구에도 쓸 수 있지 않을까?”
저널링 스킬을 이틀 동안 쓰면서, 하나의 확신이 생겼다.
지금 저널링 스킬을 활용하고 있는데, 아주 만족도가 높아. 내가 언제든, 어떤 대화창에든, 어떤 작업 중에든, 쓰고 싶은 걸 기록하면, 그걸 너가 전처리하고, 인덱스도 관리해주잖아. 그러니까 나는 정말 생각하고 글 쓰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고. 숨쉬듯이 쓴다, 혹은 쓰는 모드로 존재한다는 것이 가능해져서 좋아. 이걸 연구 아이디어에도 적용해보고 싶어.
일기를 위해 만든 이 구조를 논문 아이디어 기록에도 적용하면, 처음에 문제였던 것 — 적어두기만 하고 글로 이어지지 않던 아이디어들 — 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. 이게 스파크 스킬의 출발점이었다.
40분 만에 완성
이미 저널링 스킬이라는 패턴이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. Claude에게 이렇게 말했다:
저널링 스킬을 참조해서, 박사논문 관련 아이디어들을 투척해서 넣어놓는 스킬을 개발할게.
이번에도 니즈를 먼저 상세히 설명했다:
내가 언제든 대화창에 박사논문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던져 넣으면, 클로드가 그걸 모아서 기록하고, 알아서 태깅 같은 걸 해서 분류해놓고, 필요하면 클로드의 제안도 덧붙여두고. 숨쉬듯이 박논을 쓸 수 있다는 게 핵심이고, 나는 생각하고 쓰는 데 집중하고, 클로드가 기록과 정리, 분류, 재활용을 위한 전처리, 박논에 통합시킬 제안을 담당해주는 거지.
자정 즈음에 시작해서, 새벽 1시 전에 완성했다. 약 40분이 걸렸다.
저널 스킬과의 차이
| 항목 | 저널링 스킬 | 스파크 스킬 |
|---|---|---|
| 용도 | 개인 일기 | 연구 아이디어 |
| 태그 | 영어 (mood/energy 등) | 한국어 (연구 키워드) |
| Claude 역할 | 태그만 부여 | 태그 + 연구 맥락 코멘트 추가 |
| 이름의 뉘앙스 | 저널 = 기록 | 스파크 = 불꽃처럼 튀는 미완성 생각 |
이름을 정하는 과정이 의미가 있었다. 처음에는 idea(아이디어)로 하려 했는데, 대화를 하다가 “아이디어는 좀 더 정돈된 걸 의미하는 거잖아. spark가 낫겠다. 불꽃처럼 튀는, 덜 정돈된 생각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. 이 이름 덕분에 기록할 때 심리적 부담이 줄었다. 완성된 아이디어가 아니라 ‘튀는 불꽃’을 던지는 것이니까.
태그 레지스트리 — Claude가 내 태그를 학습하게 만들기
가장 중요했던 논의는 태그 체계였다. 간단한 태깅만 해도 무방한 저널링과는 달리, 연구 아이디어 기록은 태그의 질이 관건이었다. 특히 범용적인 태그가 아니라 내 연구에 맞는 태그가 붙어야 한다. #인심, #세도, #산림 같은, 내 논문 맥락에서 의미 있는 키워드들이다.
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. Claude는 매번 새 대화창에서 호출되기 때문에, 이전에 어떤 태그를 썼는지 기억하지 못한다. 그래서 태그 레지스트리 시스템을 만들었다:
- 기존 태그 먼저 읽기: 스파크를 기록하기 전에, Claude가 먼저 태그 레지스트리(기존 태그 목록과 사용 횟수)를 훑는다
- 기존 태그 기반으로 태깅: 레지스트리에 있는 태그 중 맞는 게 있으면 그걸 쓴다. 덕분에 일관된 태깅이 유지된다
- 새 태그도 자유롭게 추가: 기존 태그만 쓰면 너무 제한적이니까, Claude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새로운 태그도 알아서 붙인다
- 레지스트리 주기적 업데이트: 새로 생긴 태그들은 주기적으로 레지스트리에 반영된다
쓰면 쓸수록 태그가 축적되고, Claude가 참조할 수 있는 나만의 연구 키워드 사전이 만들어진다. 2주간 140종의 태그가 쌓였는데, 이게 곧 내 연구 관심사의 지도이기도 하다.
첫 번째 스파크
완성 직후 바로 테스트한 내용이, 송시열과 조선 국왕의 관계에 대한 아이디어였다. 약 600자 정도의 생각을 쏟아냈더니, Claude가 알아서:
- 원문을 그대로 보존하고
#산림 #왕권 #통치파트너 #존왕론 #사직같은 한국어 태그를 붙이고- 내 논문 체계와 연결지어 “Ch5와 연결 가능” 같은 코멘트를 달아줬다
그 밤에 쓴 저널:
숨쉬듯이 박논쓰기를 위한 스파크 스킬을 개발했다. 정말 만족스럽다. 진작에 이렇게 작업할 수 있었으면, 애플 노트에 쌓아놓은 내 노트들만 가지고도 박논 이미 다 썼을지도…
결과
| 항목 | BEFORE | AFTER |
|---|---|---|
| 일상 기록 | 애플노트에 메모, 정리 안 됨 | ”저널링할게” 한마디 → 자동 정리 |
| 연구 아이디어 | 애플노트에 산발적으로 | ”스파크.” 한마디 → 자동 분류 + 코멘트 |
| 분류/검색 | 수동, 귀찮아서 안 함 | Claude가 자동 태깅, 인덱스 관리 |
| 기록 환경 | 애플노트를 따로 열어야 함 | 작업 중 대화창에 바로 던지면 끝 |
2주간 사용 현황:
| 스킬 | 기간 | 엔트리 수 | 태그 수 |
|---|---|---|---|
| 저널링 | 9일 | 25개 | 37종 |
| 스파크 | 15일 | 29개 | 140종 |
협업 관찰
두 스킬 모두 “이런 니즈가 있어. 어떻게 하면 좋을까?”로 시작했다. 구현 방식을 지시하지 않고 니즈를 설명했기 때문에, Claude가 스킬 시스템이라는 내가 생각지 못한 방안을 제안할 수 있었다.
Claude가 한 것: 스킬 시스템 활용 방안 제안, 설계 제안마다 장단점 정리, 구현, 인덱스 관리 자동화.
내가 한 것: 니즈 설명, 설계 결정(트리거 방식, 저장 구조, 원문 보존 정책, 이름 선정), 3일에 걸친 실사용과 피드백, 불필요한 기능 정리 판단.
키를 잡은 건 Claude였다 나는 저널링/스파크 스킬의 구조를 미리 상상하지 않았다. 나보다 클로드가 더 좋은 아키텍쳐를 들고 오리라 생각했다. 대신 나는 내가 원하는 니즈, 특히 내가 경험하고 싶은 워크플로우를 상세히 설명했다. 그리고 Claude의 의견을 듣고, 질문하고, 최종 판단만 했다.
배움 포인트
첫 번째 스킬의 구조를 잘 잡아두면, 두 번째부터는 변주가 빠르다. 저널링 스킬을 써보면서 소소하게 다듬어 가는데 3일이 걸렸지만, 스파크 스킬은 40분 만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. “저번에 만든 거 참조해서 이것도 만들어줘”로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. 패턴 복제가 가능하려면, 첫 스킬에서 구조를 꼼꼼히 잡아두는 것이 핵심이다.
구현 방식을 지시하기보다 니즈를 설명하면, 더 나은 설계가 나온다. “이걸 이렇게 만들어줘”가 아니라 “이런 니즈가 있어. 어떻게 하면 좋을까?”로 시작했다. 덕분에 내가 스스로 설계했으면 놓쳤을 부분들 — 자동 태그 인덱스 관리, 원문 보존 블록, 트리거 자동 감지 — 을 Claude가 자연스럽게 제안했다.